법정스님이 많은 이에게 생각거리 하나를 남기고 가셨다.
법정스님이 ‘무소유’란 책을 펴낸지가 1976년이니 햇수로 34년째인데 스님이 입적하시자 마자 대한민국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1993년 판 무소유란 책이 1백2십만원에 경매로 팔릴 지경이라니 참으로 대단하다.

과연 ‘무소유’란 무엇인가？
스님이 말한 무소유란 불필요한 것과 그 이상을 갖지 않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데 불필요한 것이 세상에 있을까？
어떤 사람에게 불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그 정도는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해 자아字我는 ‘상대적 무소유’를 말하고 싶다.

스님의 ‘무소유’는 ‘절대적 무소유’가 아니라 ‘상대적 무소유’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하나라도 덜 채우려는, 덜 가져 보려는 무소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분수를 알아야 한다. 분수에 맞게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분수 이상의 것은 가지려하지 말고 분수를 넘는 것은 덜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처음엔 분수에 맞추는 것으로 시작하고 스님 정도 된 나중에는 분수도 필요없게 된다.
분수를 안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하나씩 덜다 보면 곧 자기의 분수를 알게 된다.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말라든가 어떠어떠한 것을 갖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보다 더 가지려는 것’보다 ‘보다 덜 가지려는 것’이 우리의 삶을 훨씬 더 윤택하게 할수도 있다는 것을 말함이다.
‘보다 덜’의 쪽을 가리키는 등대의 방향으로 길을 정하고 ‘하나라도 보다 덜 가져 보려는 마음을 가지라’인 것이다.
'보다 덜'의 지극한 곳에는 '무소유'라는 등대가 반짝이고 있다.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두갈래 길을 만난다.
오른쪽은 분수 이상으로 채우고 가지려는(보다 더 가지려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가는 길이다.
여기서는 서로가 채우고 가지려하여 서로간에 다툼이 있고 갈등한다.
채웠다 싶어서 옆을 보면 나보다 더 채운 사람을 보게되니 부족함을 느끼고 또 채우려한다.
채운다는 말 속에는 영원히 채울수 없다는 뜻이 있을수 있다.

왼쪽은 분수에 맞게 가질 뿐이며 그것도 가능하면 덜 가지고 덜 채우려는(보다 덜 가지려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가는 길이다.
여기서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제외하고는 서로가 있는 것도 덜어내며 살려고 하여 다투고 갈등할 일이 없다.
애초에 분수 이상으로는 채울 마음이 없으니 부족함을 느끼지도 않는다.
다툼과 갈등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른쪽 보다는 왼쪽 길로 가는 세상이 훨씬 더 평화롭고 살기 좋을 것 같다.

스님께서 치료하신 몇천만원의 병원비 등을 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무소유’를 잘못 이해해서 하는 소리다.
‘무소유’란 말은 아무나 쉽게 실천하기 힘든 말처럼 들리지만 그렇지도 않다.
‘절대적 개념인 무소유’라는 등대의 방향으로 한 발짝이라도 가 보라는 ‘상대적 개념의 무소유’를 이해한다면 누구나 쉽게 실천할수 있는 말이 된다.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은 ‘보다 덜’의 상대적 무소유를 말한다.
‘~없고’라고 하지않고 ‘~적고’라고 한 것은 말하라고 뚫린 입이며, 일하라고 생긴 마음이며, 밥을 넣으라는 뱃속이니 서로간에 필요하여 있어야 할 것들이지만 그 양을 ‘보다 적게 하라’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은 어렵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않고 필요 이상의 것을 갖지 않는다는 것도 헤아리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소유’는 각자 자기 사정에 맞게 소유하되 그 크기는 ‘보다 덜’ 가지려 함이므로 지금 당장이라도 하나쯤은 덜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쉽게 시작하여 하나를 덜면 둘을 덜게 되고, 둘을 덜면 또 하나를 덜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되어 덜려는 사람으로 꽉찬 사회는 서로 가지려고 다투지 않는 풍요롭고 윤택한 사회가 되리라.
쉽지만 쉽지않은 그런 사회가 ‘무소유’라는 단어 하나에 달려 있으니 법정스님은 뒤에 남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생각거리 하나를 주고 간 셈이다.

자아字我 적음.